너희는 고립되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5일 헌정사진집
[추천사] 말하는 사람들 _ 문정현 신부
8월 중순. 거리의 시인 송경동과 2008년 94일 동안을 단식하면서 우리 모두를 울린 강철 여인 김소연, 그리고 정택용이 명동성당으로 나를 찾아왔다. 앉을 곳도 없어 나무 그늘 밑에 퍼질러 앉았다. 거리에 앉는 게 더 편한 사람들.
다시 싸움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마지막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웃으며 농담처럼 “신부님이 잠깐 와 주시면 금세 이길 텐데…”라고 했다. 어리광부리듯 말했지만 나는 안다. 말하자면 그들은 나를 다시 납치하러 왔다. 민중의 이름으로 소환하러 왔다. 너무도 절박해 내게 구원을 구하러 왔다.
나는 그러나 갈 수 없었다. 그런 860만 기륭전자 비정규직들을, 용산의 철거민들을, 파헤쳐지는 4대강을 외면하는 한국 천주교회에 항의하는 1000일 기도까지 생각하고 있는 지경이다. 그래도 환하게 돌아가는 젊은 벗들을 보며 다시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아프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고, 힘들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이겨나가기를.
들려오는 소식 하나하나가 뼈아팠다. 포크레인 아래에 눕고, 올라갔다는 소식, 옥상점거농성이 50일을 넘어간다는 소식, 급기야 다시 단식에 들어갔다는 소식, 그리곤 다시 포크레인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는 소식, 경찰병력이 들어온다는 다급한 소식, 급기야 전깃줄에 매달려 죽음을 내걸고 싸워 이겼다는 소식. 한 소식 소식이 모두 핏줄 하나하나가 툭툭 끊기는 듯한 아픈 이야기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점거한 포크레인 위에서 이 사진집을 만들고 있다고 추천사를 쓰라고 한다. 아, 무슨 말을 더 보탤 것인가. 공장점거, 구속, 삭발, 단식, 고공농성, 죽는 것 빼고 다해 보았다는 6년을 싸워오고 나서, 이제 다시 둘은 단식 12일차이고, 또 둘은 포크레인 고공농성 10일차를 맞는다는 그들에게. 그 위태로운 포크레인 위에서 만들고 있다는 이 세계적으로도 기가 막힌 사진집에. 무슨 말을 더 보탤 것인가. 그런 눈물과 한숨의 6년 세월을 한결같이 찍어 온 정택용에게 어떤 축하의 말을 건넬 것인가. 어떤 비통의 말을 전할 것인가.
들어라 저 포크레인 위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보아라. 저 공장 옥상 위의 피맺힌 절규를. 지켜라. 그 아래에서 외치는 연대의 함성 소리를.
[추천사] 우리 모두는 안녕했는가 _ 조세희 소설가
격렬한 시위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이들은 자신의 안전을 생각할 틈이 없다. 그런데 나는―막강한 중대가 출동한 날에는 특히―신경써주는 젊은 사진인들의 걱정거리가 되어 도움을 받고는 했는데, 이 어두운 시대 기록에 열심인 정택용 작가도 나를 지켜준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카메라가 사람의 눈처럼 뜨겁거나 따뜻할 수 있을까. 카메라가 좌절하거나 지금 무너져 내리는 사람들에게 용기가 되거나, 희망의 빛이 될 수 있을까. 때론 상심해 카메라를 던져버리고 다른 무엇을 들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 동종의 슬픔이 어느새 그와 나를 세대를 넘어 친구로 묶어주었을 것이다.
그도 역시 나처럼 아름다운 꽃이나 새들을 찍지 못했다. 아름다운 테라스와 정원을 찍지 못했다. 직립을 이룬 지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소외된 사람들. 갇히거나, 끌려가거나, 짓밟히면서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늦게까지 거리에 남은 사람들이 그의 앵글에 담겼다. 지난한 야만의 세월 틈새에서 희망마저도 슬픔인 사람들의 얼굴이 잠시 잠깐 어렸다. 우린 그런 삶의 풍경만을 쫓아야 하는 서로의 가슴을 간혹 쓸어내려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그와 우리 시대 비정규직들의 비참의 상징이자, 저항과 투혼의 상징인 기륭전자 비정규직들이 만났다. 그 세월이 1890일, 6년이라고 한다. 이 기가 막힌 사진들 앞에서 나는 마음이 미어진다. 어떤 ‘난장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난 후 30여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사람들은 용산에서 불태워지거나, 쌍용에서 토끼처럼 몰이를 당하거나, 기륭에서 쓰레기처럼 내버려지고 있다. 그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다시 보라고 그가 지금 소리 없이 외치고 있다. 이 사진들을 보며 우리가 불편한 것은 우리 모두가 거기에 있었으면서도 정작 그곳에 부재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두고 우리 모두는 안녕했는가.
기륭을 넘어 이 책은 부끄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안타까운 자화상으로 긴 세월 남게 될 것이다.
[작업노트] 어떤 거인들에 대한 기록
이 사진집은 쉬운 길로 가기보단 옳은 길을 찾기 위해 6년째 싸워온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2005년 여름 기륭에서 처음 본 것은 철문 쇠창살 너머로 보이는 조합원들이었다. 한 아이가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안에 있는 엄마와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눴다. 1970년대도 아닌 2005년에 보아서는 안 되는 장면이었다. 그때부터 이 기록은 시작됐다.
6년의 기억을 톺아보는 것이 괴로운 일만은 아니었다. 일상적인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추위와 비바람에 맞서면서도, 끝이 잘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 덮쳐도 조합원들한테는 항상 웃음이 있었다. 그 폭력에, 막막함에 먼저 지쳐 떨어져나가는 것은 부끄럽게도 조합원들이 아니라 카메라였다. 6년 내내 온몸을 옥죄는 상황만 있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찍지 못했거나 정신적 외상이라도 입었을지 모른다. 사진을 찍으며 받았던 고통을 치유해 준 건 그런 기륭분회 조합원들이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다음 세대에 비정규직이라는 잘못된 유산을 넘겨줄 수 없다는 주관을 지키며 세속과 타협하지 않는 인간성을 조합원들에게서 봤다면, 사측으로부터는 인간성이 말살되는 과정을 봤다. 그것을 기륭전자 구사옥 철문이 상징했다. 철문은 서서히 막혀갔다. 공장 안이 훤히 보이던 철골 구조 반이 철판으로 막혔다. 조합원들은 앉아서 문 아래쪽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얼마 후 바닥 한 뼘을 남기고 철문은 철판으로 막혔다. 이제 조합원들은 땅에 엎드려서 작은 틈으로 바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측은 그 틈도 내버려두지 않았다. 철문이 완전히 막혀버린 뒤에도 철문의 변신은 계속됐다. 경찰버스가 철문을 대신하기도 했고 용역들의 검은 몸이 문이 되기도 했다. 담에는 뾰족한 유리파편을 묻었고 철조망이 둘러졌다. 그 철조망을 따라 감시카메라도 설치됐다. 교도소를 만든 것이다. 최저임금에 10원을 더 얹어서 불법으로 살아있는 기계를 쓴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들은 보여줬다. 이 책의 사진들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 철문을 배경으로 기록됐다.
기륭 조합원들이 문자해고·잡담해고를 당하고 6년째 싸워오는 동안 정규직이 되는 건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힘든 세상이 됐다. 어떻게 이런 세상이 된 걸까. 처음에 함께했던 200여 명의 조합원들은 지금 어디에서 얼마짜리 기계가 되어 있을까.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한 사람들이 있다면, 당신들 자식은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하겠느냐고 묻고 싶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기륭 구사옥 경비실 옥상에서는 윤종희, 오석순 두 조합원이 열흘이 넘게 단식농성 중이고, 김소연 분회장과 송경동 시인은 공장 안으로 들어가려던 포클레인을 막고 그 위에서 열흘이 넘도록 내려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40년 전 전태일의 외침을 가슴에 안고 6년째 싸워온 사람들에 대한 끝나지 않은 기록이다.
고마운 분들이 너무나 많다.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소중한 글을 주신 문정현 신부님과 조세희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소장님이 아니었다면 이 책이 나오는 시기는 한참 뒤가 됐을 것이다.
이 책은 포클레인 위에서 만들어진 희귀한 책이 되고 말았다. 시인 송경동 선배는 시작부터 함께해서 농성 중인 포클레인 위에서까지 출간을 위해 애써 주었다.
사진가 한금선 선배는 양만 많고 부족한 사진들을 함께 봐 주며 깊은 눈을 보태주셨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님과 실무를 보신 분들께도 인사를 드린다.
부족한 시간 속에서도 묵묵히 디자인을 해 주신 이원우 선배님께도 감사드린다.
그깟 사진으로 폭력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급박한 싸움 중에서도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게 하려고 돌아가며 연락을 해 준 분들이 기륭분회 조합원들이셨다. 그분들께 가장 큰 고마움을 전한다. 이 사진집은 그들이 몸으로 살아낸 세월에 대한 기록이다.
긴 6년의 시간 기륭비정규 투쟁에 연대해 준 수많은 이름 없는 별들, 하지만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던 사람들에게 이 사진집을 바친다.